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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마음 문 여는 글쓰기와 말하기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설 한권 쓸 만큼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파도와 물결의 높이가 만장에 이른다는 뜻이다. 한장은 3미터인데 만장이면 파도의 높이가 30킬로미터 정도라는 말이다. 인생살이가 굴곡이 심하고 평탄하지 못해 수많은 곡절과 시련을 겪으며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로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마음 속 생각을 남에게 전달한다.  소설과 이야기가 다른 점은 소설은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이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다. 창조적이란 ‘사실이 아닌 상상의 산물’이란 뜻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략)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 중에서   칼럼을 쓴지 19년이 됐다. 기쁠 때도, 슬프거나 아플 때도 칼럼을 썼다.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을 출간하고 신문사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학점 받으려고 논문 몇 편 쓴 경력밖에 없어 긴장했다.     평소 절친(?)이던 유명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일언지하 만류했다. 칼럼 쓴  경험  미숙, 긴 타국생할로 인한 언어 및 현실감각 부족, 작가들도 매주 쓰는 것이 고역이라며 고작 몇 달 버티기도 힘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펜 들고나온 사람 있냐‘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운동은 못 해도 축구공 체질이다. 그냥 두면 때굴때굴 굴러가지만 발로 차면 멀리 간다.     시작도 못 해 보고 퇴짜 맞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담당자에게 심사받듯 원고 3편을 보냈다. ’글은 괜찮은데 A4용지 한장 기준으로 반으로 줄여서 보내주세요‘라는 답신이 왔다. 초보자는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백지 한장에 삶의 맺히고 설킨 한을 매주 토설하는 것은 내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환희다.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을 늘어놓는 건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맺힌 말들을 가장 쉽고 익숙한 말들로 적는 일이다. 주접떨지 말고,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내세우지 말고, 간결하고 침착하게 정곡을 찌르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준비 운동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소설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발단과 전개를 펼치며 반전의 위기를 거쳐 절정에 도달해 결말로 치닫는다. 갈등과 위기가 반복될수록 긴장감이 높아진다. 글쓰기는 서론은 짧게 풍부한 자료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야 문맥이 단단해진다.     말을 할 때 소설 쓰듯 길고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지루하다.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고 서로 공감하며 가슴을 터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넓이와 폭은 넓히는 게 좋다. 타인은 내 과거지사에 관심 없다. 말을 할 때는 소설 쓰듯 길게 나열하지 말고, 재밌고 달달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음 밭을 넓게 가꾸면 영혼의 곡식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린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글쓰기 마음 자기 이야기 언어 선택 칼럼 제안

2023-02-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 문 여는 글쓰기와 말하기

소설 같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설 한 권 쓸만큼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파도와 물결의 높이가 만 장에 이른다는 뜻이다. 한 장은 3미터인데 만장이면 파도의 높이가 30킬로미터 정도라는 말이다. 인생살이가 굴곡이 심하고 평탄하지 못하며 수 없는 곡절과 시련을 겪으며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로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마음 속 생각을 남에게 전달한다.     소설과 이야기가 다른 점은 소설은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이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다. 창조적이란 ‘사실이 아닌 상상의 산물’이란 뜻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략)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 중에서   그럭저럭 매주 칼럼을 쓰게 된 지 19년이 됐다. 기쁠 때도, 슬프거나 아플 때도 칼럼을 썼다.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출간되고 신문사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학점 받으려고 논문 몇 편 쓴 경력 밖에 없어 긴장했다.     평소 절친(?)이던 유명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일언지하 만류했다. 칼럼 쓴 경험 미숙, 긴 타국 생활로 언어 및 현실 감각 부족, 작가들도 매주 쓰는 것이 고역이라며 고작 몇 달 버티기도 힘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펜 들고 나온 사람 있냐’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운동을 못해도 축구공 체질이다. 그냥 두면 때굴때굴 굴러가지만 발로 차면 멀리 간다.     시작도 못해 보고 퇴짜 맞을까 노심초사, 담당자에게 심사 받듯 원고 3편을 보냈다. ‘글은 괜찮은데 A4용지 한 장 기준으로 반으로 줄여서 보내주세요’라는 답신이 왔다. 초보자는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서 멈출 지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백지 한 장에 삶의 맺히고 설킨 한을 매주 토설 하는 것은 내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환희다.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을 늘어 놓는 건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맺힌 말들을 가장 쉽고 익숙한 말들로 적는 일이다. 주접 떨지 말고,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내세우지 말고, 간결하고 침착하게 정곡을 찌르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준비 운동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소설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발단과 전개를 펼치며 반전의 위기를 거쳐 절정에 도달해 결말로 치닫는다. 갈등과 위기가 반복될수록 긴장감이 높아진다. 글쓰기는 서론은 짧게 풍부한 자료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야 문맥이 단단해진다.     말을 할 때 소설 쓰듯 길고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지루하다. 대화의 공통분모 찿고 서로 공감하며 가슴을 터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넓이와 폭은 넓히는 게 좋다. 타인은 내 과거지사에 관심 없다. 말을 할 때는 소설 쓰듯 길게 나열하지 말고, 재밌고 달달하게 대화를 주고 받아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음 밭을 넓게 가꾸면 영혼의 곡식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글쓰기 마음 자기 이야기 언어 선택 칼럼 제안

2023-02-07

[열린 광장] “말좀하며 살고 싶다”

온종일 외부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지날 때가 있다.  가을 아침 창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짹짹’ 화답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새는 보이지 않는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여유롭게 즐기다 인기척이 나니,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다른 장소로 날아간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들으면 경계를 하는 본능적 반응으로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사람도 혼자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 얄궂은 코로나로 인해 지인들과의 왕래가 끊어지고,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살다 보니 마음속에 쌓이고 머릿속엔 정리가 안 된 것들도 많다. 그러다 전화라도 하게 되면 아무 준비 없이 이 말 저 말 의미 없는 대화가 오고 간 적이 없지 않다.   어제 교도소 예배시간에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재소자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준비한 성경 말씀을 읽고 서로를 소개하다가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했더니  “말 좀 하고 살고 싶다”고 한다. 독방에는 철문 가운데 식사와 편지 정도 전달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있고 교도관이 수시로 점검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 문은 항상 닫혀 있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 혼자다. 다른 재소자와의 접촉이나 대화 기회도 물론 없다.     말을 들을 수도 내 말을 들어 줄 사람도 없고, 전화도 할 수 없고, 참새 우는 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햇빛 한 줄기 비추지 않는 곳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사람이 그립고, 목소리가 그립고, 채취가 아쉬울까?     그 재소자는 많은 이야기 끝에 어젯밤 베개에서 짙은 어머니의 냄새를 맡았고, 꿈에서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잠을 깼다고 했다. 그리고 울며 밤을 새웠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자기를 용서하신 것 같다며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얼마나 어머니와 말을 하고 싶었을가?.     그 재소자는 40분 가까이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기억은 하지만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는 사연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이 너무 잘 생긴 40대 후반의 백인이다. 그 재소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목이 된 내 모습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세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덧 그를 독방으로 보내고 나도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됐다. 감히 위로나 격려의 말이나, 성경의 무슨 말씀으로도 그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려서부터 눈물 잘 흘리던  나는 양쪽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를 보며, 그도 나를 너머다 보며 같이 울었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을 마치는 말로 “형제여 당신과 내가 나눈 모든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억하고,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 믿자”고 하였다.     교도관이 방문을 여는 무거운 열쇠 소리가 났다. 서로 파안대소하며 그는 굵은 목소리로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뒤돌아보며 “신의 축복을(God Bless you) !”이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 바라보며 헤어졌다. 변성수 / 미국 교도소 선교사열린 광장 성경 말씀 열쇠 소리 자기 이야기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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